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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창고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의 의미 - 사진을 어떻게 찍을것인가. 사진의 정의와 개념

by Clover Marketer 2023. 5. 12.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의 의미

우선 소전의 시각의 영웅주의라는 글을 읽고 나서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보았다. 시각의 영웅주의라는 글에서 이야기 하는 것과 비슷하게, 지금까지 수많은 사진을 찍으면서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의 의미 자체를 생각해본 적은 없었던 것 같다. 대체로 여행을 가서 예쁜 건축물과 자연의 모습을 찍어 남기는 것에 목적을 두고 그날의 예쁜 추억을 남기고 싶을 때 보통 사진을 찍는 것 같다. 

 

 

 

또 여자친구와 데이트를 하거나 맛있는 음식점에서 음식 사진을 찍고, 인테리어가 예쁘게 되어있는 카페를 찾아가 그 장소의 모습을 남기고 싶을 때 사진을 찍고, 우리는 자랑을 하고 싶은 사진들을 SNS에 올리면서 행복을 느끼거나 자기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부럽다는 이야기나, 예쁘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고 싶어 SNS에 사진을 올리는 본질적인 이유로 생각 할 수 있다. 이렇듯 카메라에 자기 모습이 제일 잘 잡히지 않을까 해서, 사람들은 이상화된 이미지, 즉 자기 모습이 제일 잘 나온 사진을 좋아한다는 글에서 말한 주장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사진이 잘 나왔는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법을 배우고, 조금이라도 더 잘 나온 사진을 찍기 위해서 우리는 많은 양의 사진을 찍고 포토샵을 이용하여 수정하거나 변조되어 위조된 사진을 통해 우리의 모습을 미화하고 싶어한다.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의 의미는 앞서 글쓴이가 주장한 것처럼 예쁜 무엇인가 추억을 남기고 싶은 행위 자체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의 의미로는 사진이 없던 시절의 우리의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투시도법이 르네상스 시대에 현실감을 가져다주었던 것처럼 사진의 발명은 우리의 생활에서 많은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의 과거를 생각하면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그림을 그려서 사물과 자연의 모습을 전달하였다. 이렇듯 현실감을 나타낼 수 있도록 그림을 그린 것이 중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기술이 발명됨에 따라 최대한 비슷하게 따라 그리는 것에 중점이 되던 미술사에서는 한계점을 인정하고 표현주의와 같은 새로운 미술의 모습이 보였다는 것이다. 사진을 찍는 다는 것의 의미는 거짓이 없는 현실 세계를 그대로 표현해 주는 도구로써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렇듯 의사 전달의 주체로 현실에 있는 것 그대로를 거짓말이 없는 모습으로 전달 할 수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하지만 생각을 뒤집게 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요정을 사진으로 촬영했다고 하는 한 장의 사진에 의해 바뀌게 되었는데 카메라가 남의 눈을 속일 수도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사진은 더 이상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는 매개가 아닌 현실을 왜곡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의심이 필요하게 된 창작이라는 의미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보는 방법 / HOW TO LOOK

한 영역을 한꺼번에 전부 볼 수 있도록 눈의 근육을 풀고 뒤로 물러나 앉는다. 여기저기로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매우 엄격한 노력을 요구하지만 사진 찍는 연습으로 이보다 더 좋은 훈련은 없다. 아홉 살인가 열 살 무렵, 학교에서 배워야만 했던 과목들 가운데 하나가 ‘과학’이었다. 내 생각에 어떤 과목이든 선생님들은 수많은 문제들 속으로 아이들을 마구잡이로 쑤셔 넣어 절대로 그 문제들 사이의 연관관계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는 듯하다.

만약 아이들이 이 연결고리를 파악한다면 교실에 가만히 앉아 ‘생산적인 시민’을 양성하는 ‘문화’라는 시스템 안에서 비대해지기만 기다리지는 않을 테니까. 다시 ‘과학’이라는 문제로 돌아가 보자. 과학을 가르치는 선생이라고 해서 누구나 방과 후 자기 집 지하실에서 실험과 연구에 전념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 그 선생님은 인간의 눈이 카메라와 같다고 설명한다. 즉 빛이 카메라의 렌즈를 통과하는 것처럼 인간의 눈을 통과해 망막 내부의 관상체를 자극하면 그것이 관상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고 그때 보여지는 것이 인지된다는 것이다. 이 설명은 그야말로 일방통행이다. 이 설명에는 심지어 모든 과정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그림과 도표까지 따라온다. 사실이 아니라는 점만 빼면 참으로 깔끔한 설명이 아닐 수 없다. 공원의 벤치나 숲속의 바위에 앉아 사방을 둘러보면 내가 보는 대상에 따라 시야가 급속히 바뀌는 것을 깨닫게 된다.

나는 여기서 저기로 시선을 돌린다. 다시 말하면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바라본 전체가 한 장의 사진으로 조합되어 마음속에 각인된다. 우리가 과학 시간에 들었던 지리멸렬한 설명과는 다른 무언가가 진행되고 있다. 다시 말해 나의 뇌와 눈은 얼마간 서로 공모자인 셈이다. 일방통행이 아니라 쌍방통행이다. 나는 길을 걷고 있다. 길 건너편에 있는 어떤 사람이 눈길을 끈다. 재빨리 카메라를 들어 셔터를 누른다. 그 필름을 인화해 보면, 사진 속에는 내가 흥미를 느꼈던 사람뿐만 아니라 4대의 자동차, 빌딩3채, 개2마리 그리고 18명의 사람들이 있다. 카메라야말로 과학교사들이 설명했던 ‘눈’이 하는 역할을 그대로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결과를 벗어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아마도 방법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길을 재빨리 건너가서 그 사람에게 접근한다. 이때 너무 늦게 도착해서 그가 벌써 가 버렸거나, 카메라를 보고 포즈를 취해 주어 단순히 인물사진을 찍게 되거나, 카메라를 아예 피하거나 화를 낼 수도 있다. 아무튼 망원렌즈로 찍거나 대상에 밀착해서 찍는 것은 무엇보다 나를 사로잡은 요인이었던 대상을 둘러싼 주변 상황을 싹뚝 잘라 버린다. 의미가 있든 없든, 일상에서 흔히 보는 대상들을 늘 일관되게, 지적이며 감동적으로 찍는 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요기베라가 슬럼프에 빠졌다. 코치는 그에게 지금 무엇을 하는지 생각하면서 공을 치라고 충고했다. 요기는 타석으로 나갔다. 삼진 아웃을 당했다. 대기실로 돌아온 요기는 코치에게 말했다. “공을 치는 것과 생각을 동시에 할 순 없어요.” 나는 사진을 찍을 때 ‘전체’를 포착하도록 노력한다. 셔터를 누르는 순간 나의 직관과 본능을 신뢰하지 않고 전체를 포착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저 생각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다. 늘 같은 렌즈를 쓰는 것이 바람직하다. 렌즈가 제공하는 시야에 익숙해지면 ‘전체’를 훨씬 빨리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줌렌즈야말로 악마의 작품이다.

줌렌즈는 대상을 날카롭게 잡아내는 경우가 드물며, 더 중요한 이유는, 사진가의 진정한 ‘시각’을 구축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의젠느 앗제의 천재성은 그가 어디에 카메라를 놓아야 하는지 정확히 꿰뚫었다는 데 있다. 그의 천재성은 예술 창작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대상, 아름다움, 예술가의 영적, 종교적 정신세계가 완벽하게 어우러져 빚어낸 결정체다. 내가 서있는 장소에서 모든 것이 비롯된다.

-프레데릭 좀머

 

 -필립퍼키스의 사진강의 노트 

프레임은 사진가가 조작한 시각이지 결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프레임이 사진 내용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프레임 안에 들어온 것과 프레임 밖으로 밀려난 것, 프레임 안에서 빼 버려도 상관없는 것은 무엇인지가 종종 사진에서 중요한 의미를 차지한다.
                                       

 

 

 

 

사진을 어떻게 찍을 것인가 / HOW TO TAKE A PICTURE

보여지는 것. 그 자체. 너무 성급하게 메타포나 상징으로 건너뛰지 마라. 문화적 의미를 담으러 하지 마라. 아직 이르다. 이런 것들은 나중에 생각해도 늦지 않다. 먼저 대상의 표면에 떨어진 빛의 실체를 느껴야 한다. 의미는 없다. 오로지 사물만이 존재할 뿐이다.

- 윌리엄스 W.C Williams

사진이 찍혀지는 순간까지 그것과 함께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삶 전체를 통틀어 내가 배운 몬든 것들을 이 머무름과 반대 선상에 있었다.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 : 빛, 공간, 거리 사이의 관계, 공기, 울림, 리듬, 질감, 운동의 형태, 명암.. 사물 그 자체 이들이 나중에 무엇을 의미하든 아직은 사회적이지도, 정치적이지도, 성적이지도 않다.

이름을 주지도, 상표를 붙이지도, 재 보지도, 좋아하지도, 증오하지도, 기억하지도, 탐하지도 마라. 그저 바라만 보아라. 이것이 가장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저 보이는게 찍힐 뿐이다. 카메라는 파인더 안에 보이는 사물의 표면에 반사된 빛을 기록할 뿐이다. 그것이 전부다.

그것의 의미를 경험한다는 것. 몇 초에 불과하더라도 그것을 그저 바라만 보면 그 존재를 느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언어가 배제된 목소리, 음악의 선율, 도자기, 추상화, 그것의 현존, 그것의 무게, 그것의 존재와 나의 존재의 경이로움, 사실 그 자체의 신비. 아마도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남은 길이의 반만큼을 끊임 없이 가고 또 가야 되는 제논의 역설과 같다. 영원을 향한 노정의 절반에 도달했을 때 남은 거리를 뛰어넘기 위해서는 하늘의 은총이 필요하다. 그 틈새를 건너뛰게 도와줄 무언가를 희망하며 나는 계속을 찍는다.

-필립퍼키스의 사진 강의 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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